아일랜드, 국영 저축 상품서 암호화폐 제외… 2030억 달러 예금 유치 계획

아일랜드 정부가 새로 출시할 국영 저축 및 투자 상품에서 암호화폐를 전면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약 2030억 달러(1750억 유로)에 달하는 가계 예금 자산을 보다 안정적인 투자 상품으로 유도하려는 정부의 광범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과 금융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최근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이 같은 방침을 공개했다. 그는 "국영 저축 계좌가 가계의 경제적 복원력을 강화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정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계획에 따라 아일랜드 성인이라면 누구나 연말정산을 통해 세금 혜택을 받는 저축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된다. 해당 계좌는 주식, 채권,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보험 상품 등 전통적인 금융 상품을 담을 수 있도록 허용된다. 하지만 암호화폐, 파생상품, 이자 지급 현금 등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번 국영 저축 제도는 아일랜드 가계가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예금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의 2025년 말 연구에 따르면, 아일랜드 가계는 금융 자산의 2.3%만을 직접 투자(상장 주식 및 채권)에 할당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연합(EU) 평균 7.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투자 펀드 역시 2.2%에 불과해 EU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이들 자산은 대부분 은행 예금 형태로 보유되어 있다. 아일랜드 가계가 은행 예금에 묶어둔 돈만 약 203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 자금을 보다 생산적인 금융 상품으로 이동시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저축 상품에 대해 '간주 처분(deemed disposal)' 과세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간주 처분 제도는 특정 펀드에 대해 8년마다 매각한 것으로 간주하여 38%의 세율로 과세하는 제도인데, 해리스 장관은 이 제도가 새 계좌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또한, 정부는 향후 몇 주 안에 이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해당 제도의 세율은 이전 예산에서 41%에서 38%로 인하되었으며, 2024년 정부 보고서는 이 제도를 전면 폐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해리스 장관은 올해 초 의회에서 이 제도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암호화폐가 아일랜드 국민들이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체 자산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일랜드 중앙은행 연구에 따르면, 성인의 약 10%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젊은 남성들이 호기심으로 평균 2,266유로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규제와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암호화폐 대신, 보다 안정적이고 검증된 전통 금융 상품으로 투자자들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암호화폐 제외 결정은 아일랜드 정부의 최근 암호화폐 관련 규제 강화 움직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지난 8월 13일, 해리스 장관은 아일랜드 최초의 국가 차원 자금세탁방지(AML)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는 프라이빗 지갑을 이용한 거래에 대한 강화된 확인 절차와 해외 암호화폐 기업과의 거래에 대한 엄격한 실사 의무가 포함된다. 이는 지난 6월 발표된 30가지 행동 계획에 따른 후속 조치로,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아일랜드 금융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세금 혜택을 받는 국영 상품에 참여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또한, 이는 아일랜드 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보다 보수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아일랜드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번 발표가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아일랜드의 이번 결정은 다른 국가들의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