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업계, '3440억 원' 로비 자금 투입…의회에 바라는 것은?

미국 암호화폐 산업이 차세대 연방 규제 환경 구축을 위해 막대한 정치 자금을 투입하며 의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자료 분석 결과, 지난 18개월간(2025년 1월~2026년 6월) 암호화폐 기업들은 기록적인 2060억 달러(약 2780억 원)를 정치 후원금으로 지출하며 업계의 지속 가능한 연방 규제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모든 다른 기업 부문을 능가하는 수치로, 암호화폐, 인공지능(AI), 온라인 베팅 산업을 합산하면 3440억 달러(약 4600억 원)에 달하며 전체 정치 후원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 반대' 움직임을 넘어, 보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법적 틀을 구축하려는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암호화폐 기업들은 이미 'GENIUS Act'를 통해 지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규제 프레임워크를 성공적으로 구축했으며,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폴 앳킨스 위원장 주도하에 암호화폐 관련 규칙을 재정비하고 있고,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역시 더 많은 디지털 자산 거래를 미국 내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규제 정비 노력 속에서, 업계는 장기적인 성장과 투자를 위한 '내구성 있는' 규제 환경 구축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오는 9월 15일, 상원에서는 'CLARITY Act' 진행을 위한 클로저 투표가 예정되어 있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투표는 시장 구조 관련 법안이 진전을 이룰 수 있는지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하원에서 이미 2025년 7월, 294대 13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CLARITY Act는 SEC와 CFTC가 디지털 상품의 발행 및 판매를 공동으로 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수년간 암호화폐 업계 로비의 핵심 쟁점이었던 관할권 다툼을 해결하고, 투자자들에게 보다 명확한 규제 지침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창업자들은 과거와 달리 이제 단순히 '집행을 통한 규제'를 막거나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를 명확히 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한다. 문AI(Moon Pursuit Capital)의 창업자 우타르쉬 아후자(Utkarsh Ahuja)는 "창업자들은 5년, 10년 단위의 장기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회사를 구축하고 있으며, 투자자들도 유사한 관점에서 자본을 배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바뀔 수 있는 규제 환경은 자본 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산 분류, 규제 기관의 관할권, 규제 준수 요건 등이 4년마다 바뀔 수 있다면 장기적인 투자는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후자는 미국의 암호화폐 산업이 '가장 쉬운 규제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목표는 단순히 로비 활동의 언어를 넘어, 업계의 실제적인 고민과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SEC의 폴 앳킨스 위원장 역시 "미래의 규제자가 현재 SEC의 작업을 단순히 뒤집을 수 없을 만큼 '미래 대비적인' 규칙을 만드는 데는 입법이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언급하며, 업계의 요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행정부 관계자와 산업 투자자가 독립적으로 같은 지점에 수렴한다는 사실은 '규제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CLARITY Act 통과 여부는 차기 의회가 어떤 규제 논쟁을 이어받게 될지를 결정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만약 상원에서 클로저 투표가 통과되고 해당 법안이 최종적으로 법제화된다면, 시장 구조에 대한 논쟁은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업계의 주요 인사들은 CLARITY Act 외에도 ▲은행 서비스 접근성 확보 ▲실용적인 세금 규제 마련 ▲비수탁 소프트웨어(non-custodial software)에 대한 보호 등도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 프레임워크 완성을 넘어, 암호화폐 산업이 금융 시스템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비수탁 소프트웨어 보호 문제는 프라이버시와 탈중앙화 가치를 중시하는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암호화폐의 근본적인 이념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은 암호화폐가 단순한 투기 자산을 넘어, 금융 혁신과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암호화폐 업계의 기록적인 정치 자금 투입은 단순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 시도를 넘어, 미래를 위한 '내구성 있는' 규제 환경 구축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한 전략적 행보임을 보여준다. 9월 15일 상원의 CLARITY Act 클로저 투표 결과는 암호화폐 산업의 향후 미국 내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며, 업계는 이와 더불어 은행 접근성, 세금 문제, 비수탁 소프트웨어 보호 등 보다 포괄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움직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미국은 암호화폐 산업에 있어 더욱 신뢰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