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암호화폐 라이선스 난항… EU 경쟁사 진입만 열렸다

폴란드가 유럽연합(EU)의 암호화폐 시장 규제(MiCA) 이행을 위한 법안 통과에 실패하면서, 국내 암호화폐 기업들이 라이선스를 발급받지 못하는 '병목 현상'에 직면했다. 반면, 이미 EU 회원국 내에서 MiCA 라이선스를 취득한 해외 경쟁사들은 폴란드 시장 진입이 가능해져 국내 기업들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지난 9월 4일, 폴란드 하원(Sejm)은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veto)을 재의결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필요한 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해 부결되었다. 이로써 폴란드는 MiCA 규정에 따른 일반적인 라이선스 발급 절차를 진행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채, 규제 도입 시한인 2024년 7월 1일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당시 법안 재의결을 위한 표결에서 241명이 찬성하고 198명이 반대했으며, 3명이 기권표를 던졌으나, 대통령 거부권을 무효화하기 위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현행법상 폴란드는 MiCA 라이선스 신청을 접수하고 처리할 국내 감독 당국을 지정해야 하지만,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이러한 지정 절차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금융감독 당국(Polish Financial Supervision Authority)은 법률에 의한 감독 당국 지정 없이는 라이선스 발급 절차가 개시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러한 상황은 폴란드 국내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하려는 기업들에게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반면, 이미 EU 회원국 내 다른 국가에서 승인받은 경쟁사들은 폴란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EU의 MiCA 규정은 암호화폐 자산 서비스 제공업체가 EU 회원국 내에서 승인받으면, 본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통해 다른 회원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크로스보더 패스포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승인받은 기업이 자신이 활동하고자 하는 국가와 서비스를 본국 규제 당국에 통보하면, 일정 기간 이후 해당 국가에서 영업을 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폴란드 규제 당국 역시 이 경로를 통한 해외 기업의 시장 진입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이러한 '패스포트' 제도의 이점은 특히 7월 1일 MiCA 전환 기간이 공식적으로 만료된 이후 더욱 중요해졌다. 과거 폴란드에서 운영되던 가상화폐 활동 등록부(virtual-currency activity register)에 의존하여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들은 더 이상 해당 등록부에 기반한 사업 지속이 불가능해졌다. 카토비체 세무행정청(Katowice Tax Administration Chamber)은 등록부 등재만으로는 더 이상 사업 허가로 간주되지 않으며, 폴란드 규제 당국은 국내 법규나 행정 결정으로 전환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폴란드가 새로운 라이선스 발급 시스템을 공식적으로 개설하기도 전에 기존의 사업 운영 경로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폴란드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법인의 국적이 아닌,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에 대한 규제가 적용된다. 따라서 폴란드 암호화폐 기업이라 할지라도, EU 내 다른 회원국에서 MiCA 승인을 받고 크로스보더 통보 절차를 완료한 자회사를 통해 폴란드 내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오로지 기존 폴란드 등록부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현지 기업들이 바르샤바(폴란드 정부)의 법안 통과를 기다리는 대신, 이미 MiCA 라이선스 발급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다른 EU 회원국에서 승인을 받도록 유인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즉,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폴란드를 거치지 않고 다른 EU 국가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폴란드 시장에 진출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폴란드 내에서 라이선스를 신청하려는 기업들의 향후 전망은 입법부에서 관할 당국을 지정하는 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는 시점에 달려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폴란드는 자체적인 MiCA 라이선스 발급 시스템을 갖추게 되어 국내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해외에서 승인받은 경쟁사들과의 불균등한 경쟁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폴란드 암호화폐 시장의 발전 속도뿐만 아니라, EU 전역의 암호화폐 규제 조화 노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폴란드가 빠르게 관련 법규를 정비하여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국 암호화폐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