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0% 금리' 유지…인플레이션 관리 시험대

스위스 국립은행(SNB)이 0%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주요국 중앙은행들과의 통화정책 차별화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통화 가치 변동성을 고려할 때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NB는 14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현행 0%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럽중앙은행(ECB),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 사이클에 돌입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정이다. 캐나다은행과 영란은행 등 다른 주요 교역 상대국 중앙은행들도 올해 안에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SNB의 결정은 스위스 경제의 독특한 구조가 인근 국가 및 경제 동료들과는 다른 인플레이션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실제로 스위스의 8월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휘발유, 경유, 난방유 가격 상승으로 인해 0.8%로 소폭 올랐지만, 미국, 영국, 유로존 등에서 보이는 높은 인플레이션 수준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SNB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0%에서 2% 사이인 반면,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은 2%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SNB가 결국 금리 인상 기조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시장 참여자들은 12월 금리 동결과 인상 가능성을 약 50대 50으로 보고 있으며, 2027년 초까지 SNB가 금리를 인상할 확률을 90% 이상으로 점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LSEG) 데이터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내년 9월까지 SNB의 기준금리가 최소 0.75%까지 상승할 것으로 베팅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화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 또한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스위스 프랑화의 강세는 수입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킨다. 스위스 경제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프랑화 가치 상승은 수입품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SNB는 통화 가치의 급격하거나 과도한 상승이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 '적절한 통화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환율 변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지난 2025년, 투자자들이 광범위한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스위스 프랑화로 몰리면서 달러 대비 12% 이상 상승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달러가 프랑화 대비 약 4%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환율 변동은 SNB의 통화 정책 결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SNB의 '시장 놀라게 하는' 과거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스위스의 대형 은행인 UBS는 당초 SNB가 2027년 6월에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UBS 이코노미스트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스위스 프랑화 가치 하락, 높은 국제 유가, 그리고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 및 유로존 경제 등을 언급하며 SNB가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지난 6월 SNB 회의 이후 유로화 대비 2% 이상, 미국 달러 대비 1% 이상 하락한 스위스 프랑화 가치 하락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다"면서 "비록 향후 12~18개월 동안 인플레이션이 2%를 초과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SNB는 과거 시장을 놀라게 하는 행보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스위스 HIM 비즈니스 스쿨의 금융 전문가인 기드온 투몽(Gedeon Tumong)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 경제가 일부 경제학자들이 '안전자산 배당'이라고 부르는 것을 누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스위스 프랑화의 안정성과 낮은 금리 환경이 경제 주체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자산 배당' 또한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와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서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SNB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면서도 경제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정교한 통화 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지가 이번 결정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SNB의 이번 0% 금리 동결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스위스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산과 통화 가치 변동성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SNB가 언제까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 유가 상승과 같은 외부 요인이 스위스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SNB가 금리 인상이라는 선택지를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